[소설] 밤을 까고 강에서 빠져나오자 (이주란, <모두 다른 아버지>)
진호도 조금 해 보고 싶어 했는데 칼이 위험해서 깐 밤이나 먹으라고 잘 타일렀다. 원래 밤이 예뻤지만 내가 정말 잘 까 놓아서 대회가 있다면 출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시간 밤 동안, 아니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스무 개 정도의 밤을 깠다.
생밤을 까는 건 정말 정성이야, 고모.
뭔들 안 그렇겠니.
나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깐 밤을 찍고, 몇 개 빼놓고, 냉동실에 넣었다. 고모가 내년 보름에 밥에 넣어 먹겠다고 말했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그 전에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생밤을 깨물어 먹었다. 밤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리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고모가 손을 주물러 주었다. 밤을 까면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냥 생각만 하고 있을 때보단 훨씬 행복했다.
이주란, 「에듀케이션」, 『모두 다른 아버지』
「넌 쉽게 말했지만」을 읽으면서 '좋다'고 생각한 것은 그 화자의 삶이 몹시 좋아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미적지근함에 가깝게 약간 좋은 삶이 몹시 좋았다. 적게 바라고 적게 얻으면서도 미세한 행복을 느끼고, 그러니까 과히 불행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몹시 행복하다고 느끼는 화자의 모습이 좋았다. 아, 이렇게 국을 끓이고 풀을 뜯고 사탕을 사는 것만으로 괴롭고 힘들지 않을 수 있구나. 대개 그런 힘은 내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순간에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더 즐겁지도 새롭지도 않은 밋밋한 일상조차 감사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체온과 달리 우리의 마음이 상대적이라서다. 그러니까 난 행복의 효율도 무한일 수 있는 것 같다. 「넌 쉽게 말했지만」을 읽고 화자의 현재보다 과거가 궁금했던 이유도, 그러니까 이주란의 책을 찾아 읽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두 번째 책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 「넌 쉽게 말했지만」과 닮았다. 과거의 어떤 늪에서 빠져나온 사람에겐 너무 생소한, 작은 사랑과 더 작은 행복이라는 감정. 여전히 위태위태하지만 그 늪에서 있었던 사람에게만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온전하고 소중한, 살아간다는 느낌.
그리고 첫 번째 책 『모두 다른 아버지』에는 그 늪 당시에 관한 글이 많다. 「에듀케이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참고인」 외에는 모두가 참혹하고 끔찍하다. 특히 「윤희의 휴일」과 「선물」은 공포스러운 지경이었다. "삶에 간절함을 갖지 않는 태도가 다행히 윤희를 살게 하고 있었다(「윤희의 휴일」)"던 윤희는 딸을 보고 간절해진 나머지 강 속으로 잠겨버렸지. 비록 윤희는 죽었지만 「선물」의 자매는 소설 속에서 걸어나와 「넌 쉽게 말했지만」 혹은 「에듀케이션」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다. 칼로 과일을 깎는(그리고 그러다가 서로를 찔러보는) 게 아니라 생밤을 깠으면 좋겠다.
이모, 머리가 아파요. 이모도 그렇단다. 언제나 머리가 아프지. 이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피곤하구나.
(이모는 조금 더 마시고 그만 죽어버리고 싶구나. 이모는 조금 더 마시고 그만 죽어버려도 좋을 것 같구나.)
이제니,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제니 시인의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의 한 구절을 옮긴다.
이제 그만 그곳에서 빠져나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