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또래와 폭력 사이에서 위태롭기 (윤성현, <파수꾼>)

chui 2022. 7. 26. 13:09

 

 영화를 보는 동안 실시간으로 심경변화를 겪게 했다는 점에서, 또 영화를 본 후에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론을 낼 수 없도록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 나의 경우에는 기태[이제훈]가 처음에는 짜증났다가('뭐야 기태가 그냥 나쁜놈이네'), 갈수록 답답했다가('저 또라이새끼 때문에 나까지 돌아버리겠다'), 나중에는 안타까웠다('기태 시발놈아 그러게 왜 그랬어 흑흑'). 기태와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 사이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학교폭력으로 정의한다면 기태는 내가 처음 느낀 대로 그저 가해자일 뿐이지만, 작은 균열과 큰 갈등들 사이에 켜켜이 쌓여 있던 미묘한 맥락은 그것을 단일하고 명료한 사건으로 정의하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그 복잡미묘함을 소년들의 이야기로 다뤘다는 점에서 이것은 또 좋은 영화. 흔히 남학생의 사회는 거칠지만 그만큼 단순한 것으로(약육강식, 겉과 속, 앞과 뒤가 같은, ...), 여학생의 사회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복잡한 것으로(가식, 뒷담, 예민하게 발달한 눈치, ...) 그려지곤 해왔지만, 사실 아이들은 그저 각자 방식대로 치사하고 영악할(혹은 그렇지 않을) 뿐이다. 최소한 내 학창시절 속 아이들은 그랬다. 그러니까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정교하고 섬세한 논리가 매순간 기민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 그만큼 남자아이들도 위태로우며 쉽게 틀어지고 상처입을 수 있었다는 것. 사실 우리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다만 그걸 밝혀내고, 이것 역시 그 '미묘한 맥락'이야! 하고 말해준 것 뿐이다.

 

 그런, 표면적인 폭력 아래 있는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가해자에게는 응보와 예방, 피해자에게는 치유와 회복이라는 식으로 딱 원리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느낀다. 아니, 한쪽에서는 그렇게 냉정한 대응이 있되 다른 한쪽에서는 그 이상-혹은 이후-의 대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치유하고 회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이런 다짐은 너무 약해서, 너무 자주 모욕당하고 배신당하고 또 철회되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자꾸 패배하면서도 다시 다짐하길 바라는 것이다. 되새기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태가 자신이 놀리고 때렸던 사람에게 "난 너만 있으면 돼"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였다는 것. 아이들 속에서 기태는 군림하고 경쟁하고 변명하고 때로는 동정받았으나 대개는 친구였다는 것. 기태가 기태라는 것.